
덴과 질병수당 담당관의 끝없는 싸움
영국 뉴캐슬에 사는 이 아저씨 목수로 40년 동안 살아왔다고 하는 이 남성의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 에칭은 덴입니다. 덴은 얼마 전 심장에 병이 생겨서 작업장에서 추락해 자칫하면 죽을 뻔했습니다. 그런 사고를 겪고 나서 의사는 덴에게 당분간은 일을 하면 안 된다고 권고했습니다. 다행히 호전되고 있으니 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하면서 재활 운동을 하면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덴에게 별 걱정은 없었습니다. 당분간 재활에 집중하다 다시 목공소에 나가면 됩니다. 그리고 영국에는 이런 덴을 위한 질병 수당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질병 수당에 대한 영국의 복지 제도는 아주 유명합니다. 그 유명한 요람에서 무덤 까지라는 말을 만들어낸 국가이기도 합니다. 과거 구빈법을 시작으로 1940년대에 복지 국가로의 변화가 있었고 1997년 토니 블레어로 이어지며 복지 제도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그에 따른 저항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과거와는 다른 형태이지만 영국의 의료 사회보장 제도는 여전히 많은 연구의 대상입니다. 덴은 목공소를 다니다가 심장병이 발병해서 일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이 경우 산업재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쨌든 실업 상태이기 때문에 사회에서는 이러한 실업을 질병 수당과 실업 수당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병을 얻은 데이 질병 수당을 신청한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문제는 이 영화의 가장 답답한 장면이라 할 수 있는 오프닝의 대화입니다. 질병 수당을 신청하러 간 곳에는 질병수당 신청자를 심사하는 담당관의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대화 끝에 덴의 질병이 질병 수당을 받을 정도로 심하지 않다는 담당관의 판단으로 질병 수당 심사에 탈락하고 만 것입니다. 이때부터 덴과 질병수당 담당관과의 끝없는 싸움 그리고 행정 처리의 길고 긴 싸움이 시작되는 겁니다.
절차의 벽
우선 덴이 답답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는 관객들도 답답합니다. 덴의 질문과 지적은 옳습니다. 덴이 지금 자기가 일하기 싫어서 아프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장병이 발병했고 죽을 위기를 넘겼습니다. 의사는 분명히 일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의사도 아니고 하물며 간호사도 아닌 담당관이 자기 멋대로 대에게 노동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해서 질병 수당 심사를 탈락시킨 것입니다. 덴은 이런 상황에 너무나 큰 황당함을 느낍니다. 의사 소견서도 받을 수 있는 덴이 포기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대은 즉시 항소하고 질병 수당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정당한 대응이고 받을 수 있는 건 당연히 받는 것이 권리입니다. 하지만 그런 덴을 가로막는 것은 절차의 벽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통쾌함과 즐거움 그리고 묵직한 슬픔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통쾌함은 바로 이 지겹고 길고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행정 절차의 문제를 폭로하는 데에서 오는 통쾌함입니다. 슬픔은 바로 덴의 모습과 덴이 겪는 일들이 주는 안타까움입니다. 일단 전화를 하는 것부터 난관입니다. 우리 모두의 예상대로 정부기관은 전화를 하루 종일 안 받습니다. 몇 시간을 걸고 또 건 끝에 긴 대기 시간을 기다려서 통화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질병 수당의 담당자들 공무원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인물들이고 절차의 모든 것을 건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덴에게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합니다. 질병수당의 항소를 신청하려면 일단 재심사를 신청해야만 한다는 말합니다. 영화에서 이 부분이 정말 답답합니다. 재심사는 전화를 받아야 하고 전화는 오지 않고 항소를 하게 되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고 합니다. 미칠 노릇입니다. 대는 지금 당장 수당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결국 구직센터를 찾아가자 친절하게도 구직 수당을 받으면 된다고 안내를 해줍니다. 문제는 질병 수당 항소와 구직수당 신청을 위한 신청서를 내줄 수 없다고 합니다. 인터넷으로 해야 한다고만 합니다. 연필 시대 사람인 덴으로서는 차라리 집을 짓는 것이 더 쉬울 정도의 난관입니다. 그리고 덴은 구청에서 케이티를 만나게 됩니다. 케이티는 덴보다 앞서서 구직수당 심사를 받고 있던 여성이었습니다. 단지 지각을 했다는 이유로 제재 대상이 된 억울한 여자입니다. 덴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구직 센터의 사람들은 당신에게 그럴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묵살하고 케이티와 덴을 내보냅니다.
자존심을 놓지 않는 덴
그것의 인연으로 덴과 케이티는 좋은 이웃이 되게 됩니다. 덴은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며 학업과 일을 함께 하려는 성실하고 용감한 케이티를 보고 그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덴은 케이티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을 베풉니다. 전기가 끊긴 케이티를 위해 약간의 돈을 주고 아이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만들어주거나 아이들을 봐주는 정도의 친절을 베풉니다. 영화는 계속해서 덴의 장점들을 보여줍니다. 덴은 기본적으로 성실한 사람 입이다. 평생을 목수 일을 했기 때문에 손재주가 뛰어나고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전기도 잘 다루고 가구를 만드는 것도 한 번에 잘 만듭니다. 게다가 일을 쉬고 있으면서도 개인적인 자극은 멈추지 않으려고 하는 근면한 사람입니다. 옆집의 젊은이 차이나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꼬장꼬장하게 소리도 지르고 잔소리를 퍼붓는 편이지만 차이나는 덴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운동화 사업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중국인 친구와 화상통화할 때 덴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덴이 가장 난관을 겪었던 인터넷 신청 부분을 해결해 준 것도 차이나였습니다. 젊은 애들이야 금방 끝낼 수 있는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구직 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구직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지침입니다. 대는 할 수 없이 정부 지침에 따라 특강을 듣고 이력서를 쓰고 이력서를 돌리면서 열심히 돌아다닙니다. 이력서를 돌린 사실이 있어야만 구직 수당을 주기 때문입니다. 한편 케이티의 삶은 너무나 힘듭니다. 어떻게든 청소 일이라도 해보려고 전화번호를 돌리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덴이 이력서를 돌릴 때도 나오는 말이지만 일자리가 지나치게 부족한 상황입니다. 한계에 달한 케이티는 너무 굶은 나머지 식료품 지원소에서 급히 통조림을 따서 먹는 돌발 행동까지 벌입니다. 빈곤은 덴과 케이티를 너무나도 비참한 상황으로 계속해서 몰아갑니다. 살기 위해 버티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하지만 케이티에게는 일자리가 없고 덴에게는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없습니다. 정부는 계속해서 덴에게 구직 능력이 없음을 증명하라고 합니다. 구직 수당을 받기 위해서 구직을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걸 덴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증명해야만 하는 믿을 수 없는 참담한 현실 덴 다니엘 브레이크는 결심합니다.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고 그가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결심한 마지막 방법은 행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시민들은 그를 지지하고 환호하지만 결국 그는 경찰에 체포되고 맙니다. 201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자 15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켄 로치 감독의 역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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